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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2022. 12. 10. 13:50
무제 Life/생각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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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urodam에서 만났던 Hans Brinker

얼마 전 응급실을 두 차례 다녀왔다. 자다가 흉부 쪽에 쥐어짜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누우면 통증이 더해져 더 이상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흉부쪽 통증인지라 응급실에서 별 다른 이상이 없는지 각종 검사를 하고 하루종일 갇혀있었다. CT도 찍고 심전도나 초음파도 살펴봤지만 심혈관쪽에 특이점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그러고 찾아온 주말에 여자친구가 정수리 쪽에 50원 크기의 원형탈모가 생긴 것을 발견하였다. 전문의가 상태를 진단해야겠지만, 직감적으로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적절히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저 애써 무시하고 있었던 것일까.

면접을 진행할 때 기술 외적인 질문으로 항상 '본인만의 스트레스 관리방법이 있는가?'를 물어보곤 했다.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던져봤어야 할 질문이라는 생각에 돌아보게 되었다.

20대 초중반에는 스트레스가 심해지면 그냥 잠을 푹 자거나 친구들과 술자리를 통해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발산했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나 하나 건사하기 힘든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그저 철없이 해맑게 놀 수 있던 시간은 줄어갔고, 그저 내 몫이라 생각하며 속에 묻어두고 지나가게 되었다. 일련의 계기들을 통해 내가 감수해야 할 아픔과 시련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가하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던 탓이지만 결론적으로는 너무나도 깊숙히 나를 좀먹고 있었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고 마침내 몸은 신호를 보내오고 말았다.

결국 댐의 구멍을 끝까지 막았던 네덜란드 소년과는 다르게 막고 있던 손을 떼고 주저 앉았다. 쏟아져 나오는 물들은 동료들에게 닿았고 그들이 건네었던 따스한 위로와 공감 그리고 등으로 쏟아져 흩어지는 물은 알게모르게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저 쏟아지는 물을 뒤돌아 앉아 눈을 감고 맞고 있던 찰나 눈을 뜨고 주변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회사에서 신규로 채용한 두 명의 인원 중 한 명이 한 달을 조금 넘겨 퇴사하게 되었다. 그의 퇴사 사유가 어찌됐건 신입으로써 적응할 만한 충분한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 하게 되었다. 어찌 되었건 우리는 채용이 필요하고 훗날 신규 채용이 있을 경우 오늘을 반면교사 삼아 보다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되지 않겠는가.

사실 퇴사한 그가 면접을 보던 순간부터 우리 조직의 문제는 여실히 드러났었다. 리더라는 사람이 이미 전달된 면접 일정들을 확인하지 않고 면접 도중에 들어오기 일쑤였고, 장소와 시간을 미리 보내놓은 DM을 확인하지 않아 면접 도중 전화를 하거나, 그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뒤늦게 들어와 면접자 앞에서 '왜 전화를 받지 않냐며' 역정을 부리기도 하였다. 뒤늦게 들어온 탓에 이미 질문된 항목을 되물었으며 면접자는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면접이라는 것은 면접자가 회사를 평가하는 자리이기도 한 것인데, 떠나간 그에게 더욱 미안한 감정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같은 일을 반복할 수는 없으므로, 결국 우리가 팀으로써 채용할 팀원의 모습과 필요한 인력들에 대해 의견을 모아보고 싶었다. 서비스의 규모와 이용자들이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우리 팀은 주니어 개발자들로만 구성되어 있어 시니어 개발자 채용이 너무나도 간절했다. 개인적으로 대화를 시도하거나 회의를 진행하면 리더는 의견을 그저 묵살하므로 적어도 다수의 생각은 어떤가 주간회의 자리를 빌어서라도 목소리를 닿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구성원 모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더는 의견을 처참하게 묵살했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약속이 있어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했는데 결국 남아있던 두 명의 동료 개발자들과 채용과 관련된 회의를 리더와 함께 7시가 넘을 때까지 했다고 전달 받았다. 동료들은 채용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였고 리더는 언짢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다음 주 중으로 회의를 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 회의를 마지막으로 채용과 관련해서는 더 이상 회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암담했다. 눈을 뜨고 뒤돌아보니 손가락으로 막을 수 있던 구멍은 온 몸으로도 막을 수 없는 크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동료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댐을 막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손을 내밀어 주던 모습이었다. 그들의 댐에도 금이 가고 있는듯 했으나, 발 아래 찰박이는 내 댐의 물에도 내밀었던 손 그리고 무너져 가는 내 댐을 보고 펑펑 울 수 밖에 없었다.

몰아치는 죄책감 속에 문상훈 님이 유재석 님과 조세호 님에게 쓴 편지를 우연히 접한 뒤,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리게 되었다.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다짐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나날 속에서 그래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내가 될 사랑하는 사람과 묵묵히 곁을 지켜주고 손을 내밀어 주었던 따뜻한 동료들 덕분이라는 것을.

그들이 내밀어준 따스함을 동기로 다시금 벽을 막아보고자 한다. 쏟아져 들어오는 오물과 폐수를 모조리 막아낼 순 없겠지만, 언제까지고 쓰러져 있을 수는 없기에, 나도 다시 손을 내밀어 굳건히 함께 이겨낼 수 있기 위해, 문상훈 님의 표현처럼 매순간 그럴 수는 없지만 같이 '대체로' 행복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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